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F-4 팬텀 II (문단 편집) === [[베트남 전쟁]] === || [[파일:attachment/F-4/SunDowners.jpg|width=100%]] || || {{{#white '''1971년 지상 폭격 중인 미국 해군 VF-111 [[선다우너즈#s-1|{{{#FFFFFF 선다우너즈}}}]]의 F-4B 팬텀'''[br]기수방향 하향 40~45도 정도로 [[급강하 폭격기#s-1|{{{#FFFFFF 급강하 폭격}}}]] 중이다.[* [[급강하 폭격기|급강하 폭격]]은 비록 정밀폭격이 가능해져 사용빈도가 드물지만 분명히 현대에도 사용되고 있으며 주로 정밀조준장치가 전무한 항공기들이 쓰지만 가끔 있음에도 지형때문에 정밀폭격이 불가능한 경우때문에 쓰기도 한다. 심지어는, 후자의 경우 '''[[체첸전]]에선 [[Ka-50]] 헬기가 로켓으로 수직 급강하 폭격을 날려 반군 지상탄약고를 유폭시킨 전적도 있다.''' 이 경우는 카모프 헬기가 거의 동축반전 로터이다보니 과속으로 인한 후퇴깃 실속 현상이 양쪽에서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양쪽 양력균형이 계속 유지되어 조종성을 완전히 잃지는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 1964년 월남전에 참전하여 엄호, CAS, 후방차단작전 및 정찰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미 해군이 40대의 MiG기를, 공군이 107대를 격추시켜 전체 MiG기 손실량의 70%(140여 대)를 격추시켰킨 반면에 F-4의 [[공중전]] 손실은 해군이 7대 공군이 33대로 합쳐서 40대에 그쳤다. 공중전 손실비만 따진다면 1:3.67로 F-4가 확실하게 우세한 성과를 올린 셈. 그러나 [[미사일 만능주의]] 때문에 초기형에는 기관포가 없어서 공중전에서 불리했으며, [[대공포]]와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된 F-4 숫자가 훨씬 많다. 전체 손실은(비전투 손실 제외) 해군이 73대 공군이 370대로 443대이며 이중 공중전 손실은 40대에 불과하니 대공포와 SAM에 의한 손실이 공중전 손실의 10배까지 나오는 셈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초기 북폭 작전인 [[롤링썬더 작전]]에 호위용으로 참가한 [[F-100]]이 초음속기도 아닌 [[MiG-17]]에 공중전에서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F-105]]가 MiG-17의 기관포에 격추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미군은 큰 충격을 받았다. F-100과 F-105는 초음속 핵 폭격을 목적으로 설계한 기종이었다. 당연히 핵을 사용하지 못하고 도그파이트를 벌여야 하는 베트남의 상공에서는 당할 수밖에 없기는 했지만. 더군다나 당시 미군은 [[미사일 만능주의]]로 인해 공중에서 근접전이 사라질 것으로 짐작하고 [[도그파이트]]를 상정한 기종을 전혀 개발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대규모 실전에서 미사일의 명중률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거기다 미군 파일럿들은 [[높으신 분들]]이 오인 교전을 막는다면서 '적기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쏴라'라는 지침(ROE, Rules Of Engagement라 한다.)을 내려놓아서 사거리가 길고 적기 전방에서도 조준이 되는 스패로우 미사일의 진가를 살릴 수가 없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초기형 스패로우의 경우 부실한 관리와 유도장치의 저성능으로 인해 가시거리에 가까스로 들어와서야 명중률을 기대할 수 있는 정도로 신뢰도도 낮았다. 결국 적기의 꽁무니를 잡고 보어사이트 방식으로 스패로우를 쏘거나 사이드와인더를 쏘아야 했으며, 꽁무니를 잡기 위해 싫든 좋든 [[도그파이트]]를 벌여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F-4는 여타 미군 기종들보다 낮은 익면하중 등 [[F-100]] 같은 기종에 비하면 수직 기동을 활용하여 도그파이트 성능에서 우월한 점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F-4가 대MiG용으로 적극 투입되었다. 이 당시에는 파일럿들이 전문적인 도그파이트 훈련을 받지도 못했던 데다 여타 미군 기종들보다는 좋다 해도 F-4는 고전적인 선회전 성능에선 MiG기에게 밀렸기에 베트남전 초기의 북폭 작전인 롤링 썬더 작전 동안에는 고전했다. 제아무리 도그파이트를 수직 기동으로 몰고 가면 유리하다고는 하지만 전술적인 상황 때문에 한두번의 패스로 승부가 결정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보통 미군은 공격, 즉, 종심 타격을 가하는 입장이었고, 북베트남군은 방어를 하는 입장이었다. 이 말인즉슨, 미군 전투기는 도그파이트를 벌이는 상황이 되면 연료가 부족하여 수직 기동을 마음껏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나온다는 것이며, 적진 깊숙한 곳에서 벌이는 공중전이므로 당연히 심리적인 부담도 엄청났다. 반면 북베트남군 조종사들은 방어적인 입장이므로 격추당해도 탈출해서 살아남기만 한다면 다시 출격할 수 있었기에 항속 거리가 짧은 MiG기들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유리한 입장이었다. 거기다 F-4에는 기총이 없다는 점은 여러 방면에서 약점이 되었다. 적의 꽁무니를 잡고 미사일을 쏜다 해도 미사일에는 최소 사정거리가 있기 때문에 꽁무니를 잡고도 너무 가까워서 공격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일어났다. 그 뿐만 아니라 바로 전방에서 나타나는 적기를 공격할 수단이 마땅히 없다는 점 때문에 F-4 조종사들은 적기가 전방에서 나타날 때마다 매우 난처해했다. 일부 MiG기들은 이를 알아챘는지 미군기를 전방에서 기습하고는 사라지는 전술을 이용하기도 했다.[* 사실 물자가 부족했던 북베트남군 MiG기들은 기습 작전을 기본으로 운용되었다. 이게 소련 공군 운용 교리이기도 해서 이 당시 MiG기들은 멀티 롤은커녕 항속거리가 긴 기종이 많지 않았다.] 기관포 문제의 경우 미 [[공군]]에서는 "전투기에 기관포가 없다는 게 말이 되냐!" 하면서 20mm 건포드를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D형에 장비해 운용했으며 이런 공군의 불만을 받아들여서 개량한 형식이 바로 F-4E이다. F-4는 MiG기에 비해 불리한 부분이 많았으나, 반면에 MiG기들을 압도하는 추력과 롤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었다. 미군 파일럿들은 MiG기의 선회전 성능에 대응해 F-4의 추력과 롤이라는 장점을 활용한 3차원 기동을 만들어내면서 MiG기에 대응해 나갔다. 특히 [[미 해군]]은 [[탑건]] 과정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도그파이트에 대비한 훈련을 했다. [[라인배커 작전]]이 진행되던 1972년만 해도 2기가 배출될 정도로 열심이었으니... 그러나 [[미 공군]]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체계가 잘 잡혀있지 않아서 개념있는 지휘관(예를 들어 [[볼로 작전]]의 영웅 [[로빈 올즈]] 대령 등...)이 이끄는 부대들만이 제대로 된 기량을 선보였다. 특히, 로테이션 제도 때문에 막상 실전 경험이 조금 쌓이려고 하면 신참들로 교체되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크게 기량이 향상되지는 않았다.[* 이 로테이션 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있었던 역사가 깊은 제도였다. 전선에서 실전 경험이 충분히 쌓이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전과를 올린 [[베테랑]] 파일럿들을 후방의 교육부대로 돌려서 훈련생들을 가르치는 [[교관]] 역할을 맡기는 식으로 운용되었기에 2차대전 당시의 [[미군]] 파일럿들의 평균적 기량을 크게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 덕분에 미군 파일럿들은 [[독일군]]이나 [[일본군]]의 파일럿들에 비해서 한층 더 높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렇듯 2차대전 무렵까지만 해도 여러모로 순기능이 많은 제도였으나, [[베트남 전쟁]]에서는 실전 경험이 충분해지기 전에 파일럿을 뒤로 빼버리는 통에 전선부대를 실전 경험이 부족한 신참 투성이로 만들어 버려 오히려 역효과를 발생시키고 말았다.] 물론, 베트남전 이후로는 달라지지만... || [youtube(97BSRa7kWrY)] || [youtube(JiYjpqxE1g8)] || || {{{#white '''속으면 죽는다! 하늘 위 죽음의 눈치싸움 [도그파이트: 구름 속의 전투]'''}}} || {{{#white '''F4 슈퍼 에이스의 비기 하이스피드 요요 기동!! (지금방송중) [실전 최강 전투기 대전2]'''}}} || [[파일:쇼타임100 하세가와.jpg]] F-4의 장점을 활용하는 [[공중전투기동]]의 개발과 훈련은 베트남전 후반기의 북폭 작전인 [[라인배커 작전]]에서 진가가 드러났다. 롤링 썬더 작전 때와는 달리 F-4는 공중전에서 MiG기를 크게 웃도는 성과를 올렸으며, 특히 미 해군은 탑건 과정을 수료한 파일럿들이 대활약하는데 탑건 과정을 수료한 VF-96 소속의 [[랜디 커닝햄]](조종사)과 윌리 드리스콜(RIO/레이더 요격 관제사)[* 당시 [[미 해군]]의 팬텀 승무원은 조종사+RIO(Radar Intercept Officer, 레이더 요격 관제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RIO는 [[미 공군]]의 WSO(Weapon System Officer, 무장관제사)에 해당하는 보직이다.] 콤비가 베트남전에서 미 해군 최초의 에이스가 되었다. 미 공군은 해군만큼의 도그파이트 훈련이 없고 조종사들간의 능력 편차가 크다 보니 해군보다는 덜 압도적이고 들쑥날쑥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스티브 리치]](조종사)와 척 드벨뷰(WSO/화기 시스템 관제사) 콤비가 미 공군 최초의 에이스가 되는 등 롤링 썬더 작전 때보다는 크게 나아진 성과를 올렸다. F-4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전투기가 아닌 SAM(지대공 미사일)을 비롯한 방공망이었다. 롤링 썬더 작전 초기에는 [[RWR]]도 장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주변을 잘 살피다가 SA-2가 내뿜는 수직 비행운을 감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총이 없어 상대적으로 해군형 F-4가 공군형에 비해 공중전에서 밀렸지만, 베트남전 당시 공중전 격추 비율로는 해군이 공군보다 더 우수한 성과를 올렸다. 이는 탑건 훈련도 영향이 있었고, 미사일도 해군의 AIM-9이 더 추적 능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관리부실 때문에 불량품이 넘쳐난 것은 공통적인 사항이지만... 한편 미 공군,미 해군 모두 F-4를 운용해보니 공중전에서뿐만 아니라 지상 폭격 등 다방면으로 쓰기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때문에 F-4는 베트남전 내내 MiG기 사냥만이 아니라 여러 대지 공격 임무에도 다방면으로 쓰이며 멀티롤 파이터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미 해병항공대의 경우 주 임무가 지상공격이나 지상지원이다보니 이러한 멀티롤 능력이 더욱 각광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